새벽 ----


새벽 다섯시, 가까스로 일어나서
공항까지 간다고 바득바득 우겼으나 결국
리무진 정류장까지만 태워다드렸다.
정류장엔 외국남자 한명, 젊은 여자 한명, 젊은 남자 두명, 젊은 커플 한쌍.
다들 놀러가나봐.

까만 하늘을 보면서 동네로 들어오니 침침한 회색빛이 밝아왔다.
구름이 잔뜩 껴서 적막한 분위기.
회색의 아파트와 학교가 어디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듯이.
초등학교에서 한낮인데도 어둑어둑한 날이면 친구들과 실컷 괴담이야기를 한 생각이 떠올라
음악 틀어놓고 학교 주변을 몇바퀴 더 돌아보는데
옆자리에서 창밖 구경을 끝내고
건너와 살며시 내 무릎 위에 눕는 하얀 강아지.

미국으로 데려가면
이렇게 새벽이고 밤이고 무릎에, 옆자리에 앉은 너와 드라이브를 오래 할텐데.











반팔 입을까 긴팔 입을까 ----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 3월. 시도는 많았지만 대부분이 실패로 끝나 
어디서 어떻게 이 마음을 위로를 받아야겠는지 모르는 채로 불쑥, 4월.

몇 편의 영화, 책, 산책. 이제는 확실히 봄비가 되어버린 비가 오는 오늘 오전에 
산책을 하는데, 3월은 딱 3월 다웠고, 4월은 정말로 4월 답구나.했다.
갓 태어난 초록색들이 빗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던 날.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 꽃송이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목련 꽃봉오리. 빗속을 뛰어다니는 강아지들. 개나리. 진달래 꽃봉오리. 꽃. 꽃. 꽃.
스스로에게 적잖이 실망해버린 마음을, 다시 시작하자고, 할 수 있다고 다독이고.
아직은 배우는 꽃봉오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실망도 후회도 적당히 하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만들지 않도록 하자고. 
매 순간 허투루 보내느니 안하는 것만 못하니까. 한 번 시작한 건 끝까지 긴장을 놓지 말자고. 
강아지들은 뛰어다니고. 머릿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고.
집에 와 흙투성이가 된 아가들을 씻기면서도.

그러고나니 좀 마음이 개운해졌다. 

마지막으론 달콤한 초코바와 함께.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참 단순.

- 4월 초. 요리 입문, 애견 유모차, 도서 리스트 구입, 성공적.



모든게 끝난 3월 ----

러시아어 입문반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달달달 외우며 복습을 하고 갔지만 부담은 없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간 것 같다.
나름 희귀한 언어이기 때문인지, 그저 이 학원의 불황인건지, 입문반 학생은 나밖에 없어서 여러모로 더 짠한 마지막 수업이었다. 

토론은 저번 주, 그리고 교육봉사는 어제가 마지막 수업이었다.
몇 달 동안 수업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의 표시로 초콜릿 케잌을 사갔다.
마지막으로 그릴 소품이라는 농담은 통하지도 않은 채, 케잌은 삼분 만에 배고픈 아이들 열댓명의 입으로 사라졌다. 
'선생님, 그동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먹기 전에 한마디씩 들려온 말에 마음이 아파왔다. 
마지막 달 3월엔 매 주 들르지도 못했다. 약속된 3월이 끝나고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는 수업인데.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감당하지 못하는 지금 내 상태가 아이들에게 참 미안해졌다.

미래의 수업 계획표를 짜보기도 하고, 가르쳐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이 떠올라 사실 4월, 5월의 연장도 욕심이 났지만
3월이 되어 다른 일들이 많이 생겨 바빠지면서 확신했다. 최선을 다해 수업을 준비하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아이들을 실망만 시킬 바엔 책임지지 못할 일, 안하는 게 맞는 거라고.
지금까지 야심차게 계획했던 수업내용들을 모조리 다 가르쳐주지 못한 것만 해도 아이들에게 부끄럽기만 하고 실망스러운 일인데.
이제는 아이들도 한명 한명 잘 알고 있으니까 다시 해보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매 주 보던 아이들을 떠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고, 애들도 날 쉽사리 보내주질 않았다.
문을 막고 서있는 아이, 발에 매달리는 아이, 팔에 매달리는 아이, 반은 장난으로 하는 거지만 가지 말라며, 아쉽다며 매달리는 그 진심이 전해져 더 안타깝기만 했다.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싶었다. 
자주 나를 따로 불러내어 비밀 얘기를 해주던 아이가 이번에도 엄청난 비밀이 있다는 얼굴로 나를 손짓으로 불러냈다.
'선생님, 이제까지 공부하기 제일 좋았던 선생님은 선생님 밖에 없었어요' 이 말, 평생 간직할 수 있게 해줘서 내가 훨씬 더, 고마워.
아무 자격도 없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라줘서, 집중해서 수업 들어줘서, 
장난기 가득한 아이도, 의젓한 아이도, 조용한 아이도, 애교가 넘치는 아이도, 누구 하나 반항하지 않고 나를 좋아해줘서, 항상 이쁜 미소만 보여줘서 고마웠다. 비밀이 가득한 친구가 언젠가 선물이라며 전해준 하얀 조개 껍데기도 잘 보이는 곳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단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보고, 문자들도.
'수업 재미있었니?-꿀잼이었어요!' '담에 맛있는거 들고 놀러올께!-피자 사주세요, 초밥 사주세요, 치킨 사주세요... ' 못들은척^^하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까지 아이들 한명 한명 안아주고 또 안아줬다. 언젠가 무더운 여름날에 아이스크림 한바구니 들고 놀러갈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당장 전화해서 4월에도 수업 계속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어지는 저녁이었다. 
오늘까지도 몇몇의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나서 센터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들을 쭉 훑어봤다.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안되겠다. 언젠가 어떻게서든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멀지 않은 날에. 어떤 모습으로든 간에. 다시 보고 싶은 얼굴들. 

앓던 이였어도 내 몸의 일부가 빠져나간 듯한 시원 서운해지는 삼월의 말일이다. 
그 누구와도 아무런 약속을 잡아놓지 않은 4월은 나에게 도전의 달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해보는 도전들로 가득 채울 봄날들. 나뭇가지에서 황금연두빛 새싹이 돋을 때 함께 시작해보고 싶은 작은 도전들. 기대됨에 비례해서 3월을. 지난 사람들과 추억들을 보내고 싶지 않다. 보내지 않고 싶어도 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어도.
아, 말이 끝나자마자 12시.
4월이다.


                                                                                            초상권을 위해 가려준 아이들의 얼굴. 그리고 참 짧은 선생님 ^^;;



카라멜 팝콘. ----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님아....마오' 영화를 못봤다ㅠ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깜깜한 영화관에서 가족 넷이서 나란히 앉아 영화 보는, 자주 오지않는 시간을 놓쳤다.
가족들은 불쌍해하는 눈길로 내 임무까지 다하고 오겠다는 듯 거의 비장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왔을때, 모두의 얼굴에 빨간 눈을 기대했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웃으면서 감상을 얘기해준다.
나중에 친구랑 꼭 보러가라고 한다.
언니가 남겨 가져온 새것처럼 양이 많은 대형 팝콘을 옆에 두고 
할일을 하고 있자니 방안에 가득찬 카라멜 팝콘 냄새에 영화관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아쉬움이 줄어드는걸 느끼면서 한알씩 집어먹었다.
냉장고엔 편의점에서 사온 차가운 페트병 콜라가 들어있다. 원래 팝콘에 콜라는 빼먹으면 안되는 나를 잘 안다.
영화를 보러 간 것보다 더 좋다. 우리 가족은 참 좋다. 



그 여름날의 산책 -






첫째의 살인 미소 폭발



























나두 네가 행복한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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